27_the projectionist

이 공연의 제목과 내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세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행준씨가 일전에 북소사이어티에서 상영했던 연기로 만드는 3D 원뿔(제목은 정확히 기억 안남)을 설명하며 ‘디지털프로젝터에선 완전한 블랙을 구현할 수 없다. 오직 프로젝터에선 가능하다’라고 했던 말에 자극을 받아 무언가 만들어야 겠다란 생각이 있었다. 옳은 말이다.디지털 프로젝터에선 아무리 완전한 블랙을 내려고 해도 희끄무레하게 무언가가 보인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디지털화 시켜 상영한다는 것은 원작을 완전히 해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온전히 블랙에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선 밝기를 낮춰야 한다. 사실 디지털 방식으로 투사되는 모든 곳에서 소스에 따라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한 부분 중 하나는 디지털 프로젝터들이 고장나면 가장 고치기 어렵고 수리비도 많이 드는 부분이 바로 빛을 투과해 뻗어나가는 렌즈부분이다. 디지털과는 별 상관이 없는 그것. 나는 디지털 프로젝터를 이용해 블랙을 구현하기 위해 앞에 물체를 이용해 빛을 가로막았다. 이러므로 블랙이 구현 되었지만 영상을 투사하는 것이냐 아니냐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리허설중 이행준씨가 다른 확장영화들을 추천해 준 것들이 있는데 이 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두번째로는 23번째 연주회에서 ‘balloon and needle‘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영상-퍼포먼스를 했는데, 그것을 좀 더 보강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30분정도 연주를 했는데 퍼포먼스가 너무나 썰렁해서 나 스스로도 오그라들어 이것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했고, 이 부분은 협연을 하게 되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 봤는데, 썰렁하다는 느낌은 없어졌으나 이젠 좀 과한 상황이 되었다는게 다른이들의 평. 그러나 나 스스로는 만족하고 재밌었다. 아마도 관객들이 지적한 그 부분을 알기 위해선 올려진 비디오를 모니터링 해봐야 겠지만, 현재로는 만족한다.

마지막으론 나의 생업이 ‘프로젝터와 관련되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생업 아이템으로 공연때 뭔가 해보고 싶었는데 이행준씨가 마침 제목을 ‘the projectionist’로 붙여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행준씨가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프로젝셔니스트인 나는 이름이 주는 대비감이 매력적이어서 내가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이 즉흥연주를 ‘RELAY‘에서 처음 시작하던 때에 프로젝터를 필요로 하는 몇몇 미디어 기반 작업자들에게 기술적인 도움(혹은 제품 판매)을 줄 수 있었는데, 연주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생업에도 일조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문제는 이것에 대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인데, 너무 한쪽으로 매몰되면 지나치게 장사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될 수도 있었고, 상대방이 날 더이상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된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런것을 극복하는 의미에서의 공연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써야만 하는 생업의 도구들을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용해 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정도로 정리하면 될 듯 싶다.

투사되는 영상은 간단하다. 파워포인트로 페이지마다 내가 원하는 색들을 적절히 배치시켰고, 15장정도의 페이지를 상황에 따라 바꾸며 투사한다. 개인적으로 나름 첨단 기계들이 내것이 되었을때, 그것을 매우 단순하게 사용하는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Pulse를 내고 싶은데 컴퓨터가 싫다고 아날로그 pulse generator를 찾아나서기 보다는 max/msp류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만들어 사용한다. 단, 이것이 100% 원하는 느낌의 것이 아니더라도 그정도의 효과 또는 대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때 사용하게 된다. 나름의 하이테크놀러지라는 옛날 PDA들이 5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중고로 팔리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것들이 구하기가 용이하고, 그 기계들의 사용법 혹은 목적을 최대한 단순화 시켜 효과를 보고싶은 하나 혹은 두개에 집중해 그것이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면 구지 구하기 어려운 옛날 기기들을 찾아 해메지 않는다. 

가끔 테크놀로지란 것은 작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잊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원하는 무언가를 잊은 채 또는 주관이 흔들려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새로운 인터페이스/센서들의 출현, 소프트웨어들의 출시에 흥분하거나 하는 몇몇 작가들을 보며 값비싼 프로그램과 특이한 센서만 가지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처럼 보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직관적으로 내고 싶은 효과가 있다고 할때 그것이 어떤 특정 기술들(특히 디지털)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서 애써 피하려고 하진 않는다. 이러면서 예상하지 못하는 실패를 하기도 하고 다른 질감이 얻어지기도 하는데, LCD프로젝터의 특성상 픽셀과 픽셀사이의 간격(Pixel pitch)덕분에 격자(Grid)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인해 물체들이 프로젝터의 불빛을 받아 상이 맺힐때 디지털하게 보여지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 소위 말하는 ‘얻어걸린 것’ 중 하나겠다. 나중에는 할로겐이나 전등을 이용해서도 해 볼 생각인데 이것이 과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여전히 내가 판단해 수위를 조절해야할 문제다.

사용한 프로젝터 :
main_NEC NP1150 with NP01FL (short lens)
sub_Hitachi CP-X805 * 2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