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홍철기

 

CRW_5671왜 그랬었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는 그날 연주를 시작할 때까지도 잠이 완전히 깨질 않았다. 날씨는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내 솔로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의 밀도가 높다는 것이 반드시 연주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내 솔로 연주는 소리와 소리, 연주와 연주 사이의 전환점들의 간격이 매우 조밀해서, 결과적으로 밀도가 높았다. 즉 매우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소리를 끊고 이어가면서 연주했기 때문인지 짧은 시간을 정말로 오랫동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했다고 생각하고 연주를 마쳤을 때도 시간은 15분을 넘지 않았다. 턴테이블의 플래터 표면에 바늘을 직접 마찰시키고, 카트리지가 입력 받은 신호를 전달하는 약간의 노출된 톤암의 전선 부분을 합선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믹서 피드백과 원리상 동일한) 나는 연속적인 소리, 혹은 침묵의 구간 간의 단절과 단절 사이를 바쁘게 오가면서 연주를 했다. 내 솔로 연주는 닻올림에서의 연주 직전까지 몇 달 동안 전념한 DVD <Expanded Celluloid, Extended Phonograph>의 음향 작업(영상: 이행준) 중 발견하게 된 (그리고 실은 믹서 피드백을 주로 사용하던 시기의 방법과 일치하는) 방법들을 활용하였다. 15분도 채 되지 않은 연주가 끝나자 나는 잠이 완전히 깼다.

CRW_5689그날 두 번째 세트는 닻올림 주인장과의 듀오 연주였다. 이때는 솔로와 달리 보다 긴 호흡을 갖고 연주에 임했다. 노이즈나 즉흥연주에서는 미리 정해놓은 방향이나 악보가 없고 심지어 그러한 악보가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물론 미리 정해진 방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협연을 하게 되는 연주자나 공간에 대한 예측이나 합주를 통해서 결정되기 보다는 첫째로는 악기(음악의 도구이자 재료, 그리고 데릭 베일리(Derek Bailey)가 말하는 것처럼 나의 “동맹(ally)”이기도 한)의 선택에서 결정되고, 악기가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결정되며, 둘째로는 연주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시공간 안에서의 “듣기”라는 행위에 근거하여 결정된다—따라서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특히 두 번째 결정의 계기는 믹서 피드백과 같은 기계 내적인 피드백(internal feedback)을 연주에 이용할 때보다는 피드백 룹에 연주 공간도 포함시키는 외적 피드백(external feedback)을 이용할 때 훨씬 중요해진다. 이날 솔로 세트에서 내 연주가 전자에 가까웠다면 듀오 세트에서는 후자에 가까웠다. 믹서의 버튼을 잘못 눌러놓는 ‘실수’도 여기서는 음향을 구성하는 연주의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솔로연주가 끝나고 보다 맑은 정신상태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듀오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by 홍철기 HONG Chu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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