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최준용

CRW_5274‘능숙하지 않은 연주’로 발생하는 ‘적나라한 소리’의 전달이 나의 솔로 공연의 기본 방향이었다. 이런 생각은 종종 겪었던 즉흥연주나 전자음악에서 느꼈던 어떤 반발심리에 의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연주에 몰입되어 펼쳐지는 화려한 연주나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서 나오는 매끈한 소리의 반대지점 혹은 바닥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 자신도 어느 정도 반발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소리와 연주가 관객들을 압도하여 ‘우와’가 아닌, 눈과 귀에 아무런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피식’거릴 수 있기를 바랬다. 물론 이런 효과는 닻올림이 작은 공간이어서 관객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기대해볼 수 있었다. 즉, 작은 공간에서 어쿠스틱으로 연주를 하면 소리가 나는 곳이 스피커가 아닌 그 물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으며, 스피커의 ‘소리를 증폭시킴으로써 음악처럼 들리게 하는 기능’을 배제할 수 있었다.
 
CRW_5285그때의 악기인 릴테이프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특성도 그런 능숙하지 않은 연주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내 마음대로 원하는 소리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악기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드라이버와 같은 도구까지 들고 컨트롤하려면 손이 세 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매끄럽게 연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날은 테이프를 플레이하지 않는 대신에 릴테이프 플레이어의 회전과 피드백으로 인한 진동으로 줄자, 심벌조각, 클립, 어쿠스틱기타 등의 매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소리를 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생’소리가 다른 소리와 어울리게 하지 않고 그냥 울려퍼지게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소리라고 하여도 음악적인 구조 속에서는 금방 ‘음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악기의 앙상블처럼 말이다. 그 소리 자체의 톤이나 다이내믹의 변화가 이미 음악적인데 굳이 다른 성격의 소리를 보태어 풍부하고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뒤에 이어진 박승준과의 듀오에서는 오히려 두 가지 소리의 병렬배치를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적나라함을 전달하는 시도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진짜 나의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바닥’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이런 관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습관적인 ‘노이즈음악’의 연주로 돌아간 것 같아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즉흥연주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즉흥연주에서 피하기 힘든 부분이 이런 습관적인 연주라고 생각한다. 매순간 다르고 어떻게 될 지 예측할 수 없는 연주가 즉흥연주인데 오히려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다보면 자기 몸과 귀에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많이 경험했었다. 물론 매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협연에서의 즉흥연주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경우에는 즉흥연주의 자유로움이 오히려 방해가 된 것이다. 만약 작곡을 하여 제약을 주었더라면 나의 소리에 대한 욕심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 또 닻올림에서 솔로 공연을 할 기회가 있다면 이런 작곡을 시도해보고 싶다. 

by 최준용 Choi Joon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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