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공연을 제의 받았을 때 “아주 작은 공간에서도 무용공연을 할 수 있나요?” 하는 질문에서부터였다. 무용을 하기에 아주 작은 공간이란 말은 내게 ‘제한’ 또는 ‘한계’라는 과제를 생각나게 했고 그것이 작업에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진상태 선생님도 그리고 나도 작은 공간에 맞는 제한된 움직임들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연습을 하다 보니 작은 공간에 작지 않은 움직임들의 매치가 더 흥미롭기 시작했다. micro한 공간에 micro하지 않은 움직임들을 매치하기.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작은 집과 큰 사람이었고, 또 예전에 읽은 한 건축가의 책에서 공간에 대한 폭력을 이야기 하며 작은 엘리베이터에 가득 찬 사람들, 작은 교회에 장대 같은 높은 신발을 신고서 공연하는, 공간과 조화되지 않는 내용물들에 관함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춤이 공간에 비해 그만큼의 과대한 효과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러한 아이디어와 시도들이 재미있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다른 초점은 ‘관점’ 이었다. 공간의 모양이 일반적인 사각이 아니고 부엌을 통한 복도도 있기에 이곳 저곳 다양한 공간의 모습들을 사용하려니,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의 공연행위를 보여주려고 비디오 프로젝트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것이 실제 공연자의 행위와 화면을 통해 비춰지는 공연자의 모습의 방향이 바뀌는 재미있는 면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실제로는 두 공연자들이 서로 마주보고 춤추고 있는데, 영상 화면에 의해 그들이 서로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지는 관점의 다양성이 생겨났다. _노경애 / 컨셉, 안무
** 공연장도 야외도 아닌 작은 오피스텔에서의 공연은 우리 공연에 여러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시 해준 것 같다.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작게 움직여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큰 움직임으로 공간을 채워 나가는 시도 또한, 일반 공연장과는 다른 공간이기에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재미와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여러 소품들로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춤 출 수 있어 즐거웠다. _이희승 / 창작, 무용
*** 이 공연은 무용수가 나와 춤을 추고 그것의 음악을 제공해 주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나 스스로는 무용수들의 춤사위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즉흥음악의 형태로 이해하는 공연을 생각했다. 즉 이 공연의 모든 무용수가 연주자라 생각하며 협연을 했다. 이런 생각을 처음 이 ‘불특정한 언어’를 제안 받고 나서부터 생각했었지만, 첫 공연했던 장소는 넓고 울림이 심한 곳이어서 무용수들의 모든 몸짓이 소리로 드러나기엔 어려웠다. 그래서 피에조를 이용한 발판을 마련한다든지, 모두에게 무선마이크를 장착한다든지 하는 생각들을 실천해 보았으나 크게 효과적이지는 못했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게 되는 좋지 않은 상황도 발생되었었다. 그러나 작고 밀집된 공간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이것이 닻올림의 공간성으로도 살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쿠스틱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하드디스크를 어쿠스틱으로 연주했고, 나중에 다른 연주와 연계도 가능할 것을 예상되는 양철통들과 세가지 타입의 오르골을 하드디스크와 연계해 연주했다. 요즘 들어 관심이 가는 부분이 물체의 평행과 균형이 소리로 바뀌는 부분인데 양철통들을 쌓아서 하드디스크의 움직임과 연계했던 부분은 결론적으로 무용에서의 ‘불균형’ 부분과 연결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경험으로 퍼포먼스를 좀 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무용이나 음악의 경계를 다른 시각으로 모호하게 만드는 무언가의 실마리를 알게 된 것 같고,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면 조금 더 애매한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_진상태 / 음악
작년(2010년) 12월,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은 나의 첫 한국 방문이었는데, 진상태, 류한길 등 서울에 사는 뮤지션들이 투어차 몇 번 도쿄에 왔을 때 같이 연주하고 술을 마시다가 이루어진 것이다.
짧은 체류 일정은 레코딩 1번과 콘서트 2번으로 바빴다. 그 중 레코딩과 콘서트 1번씩은 진상태가 빌리고 있는 오피스텔 방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가 ‘닻올림’이라고 이름붙인 그 방에 들어섰을 때 든 느낌은, 너무 넓지도 않고 너무 좁지도 않은, 그래서 나에게 딱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 大友良英)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도쿄 키치죠지의 아파트 방 하나를 콘서트장으로 탈바꿈시킨 GRID605나, 화가 겸 뮤지션인 아츠히로 이토(Atsuhiro Ito, 伊東篤宏)가 도쿄 주택가의 작은 집을 갤러리로 개조한 오프 사이트(Off Site) 등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는데, 그 중 오프 사이트는 나와 토시마루 나카무라(Toshimaru Nakamura, 中村としまる) 등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외의 뮤지션을 초청해 즉흥 연주 콘서트 시리즈를 열었던 곳이다. 앞의 콘서트장 모두 나의 메인 악기인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에는 최적의 넓이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작은 소리를 내는 악기라도 소리를 방 안에 충분히 울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관객과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때로는 1미터 이하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악기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연주자의 숨결-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즉, 즉흥 연주자가 다음 순간에 어떤 소리를 내려고 하는 기운이, 말그대로 몸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기운이란 건, 연주자의 몸짓에서 예상된다거나 하는 단순한 게 아니다. 정적을 유지하거나 지속음을 계속 내거나 미동조차 하지 않는 연주자들의 분위기에서조차,그 배후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인 것이다.
이야기를 바꿔서, 서울에 도착한 날에는, 조 포스터(Joe Foster), 홍철기, 진상태, 거기에 나까지 4명이 닻올림에서 레코딩을 했다. 그 다음 날 콘서트에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조 포스터를 제외하고 전날의 세팅대로 나머지 3명끼리 연주를 했다. 그 날 연주는 닻올림에서 2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리즈의 14번째 콘서트였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쿄에서 이와 비슷한 즉흥 연주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주최해 온 나로서는, 이런 현장에 참가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매우 가까운 거리임에도 지금까지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던 한국이었는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콘서트는 길게 한 세트를 했다. 나는 피드백을 이용하기 위해서 기타 앞에 마이크를 세우고, 기타의 사운드 홀 부분을 손바닥으로 마이크와 함께 싸서 작은 소리로 피드백 · 드론(drone)을 컨트롤했다. 진동하는 기타의 몸체 표면에 놋쇠 막대를 가볍게 쳐서 지속적인 노이즈를 만들거나, 그 놋쇠 막대로 기타 줄 위의 배음(倍音) 지점을 문질러서 여러 개의 고주파 배음이 복잡하게 얽히도록 연출하기도 했다. 상태는, 평소의 그의 세팅대로 하드 드라이브, 콘택트 마이크, 믹서를 사용한 피드백이나, 세심한 글릿치(glitch) 노이즈를 이용한 불규칙적인 비트를 만들어내서 독자적인 불안정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철기는, 아날로그 레코드 플레이어인 턴테이블의 회전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거기에 어디선가 주워 온 것 같은 일상용품 등의 일부분을 문지르거나 활로 연주해서 불가사의한 지속음 등 굉장히 변화가 풍부한 소리를,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 어쿠스틱으로 만들어 내었다. 최근 나의 연주는 멜로디를 만들어서 전체를 추상적인 음악적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식인데, 이 날 기타 연주에서는 보다 즉물적이고 음향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연주했다. 그건, 그들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원시성에 동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트리오가 만들어낸 소리들은, 얽히지 않으면서도 얽히고, 조화롭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우며, 어딘가 막 생긴 행성 위에 쏟아져 내린 비가 모여 생긴 강이 우거진 원시림 사이를 뱀처럼 기어가며 맑아지거나 탁해지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만드는 듯이 흘러갔다.
한국 실험 음악가들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들의 음악은 소위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저 악기가 아닌 것으로 하는 연주라면 요즘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규범으로 해야 하는 구식 개념을 깨려는 서양적 접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노이즈 음악처럼 그저 사운드의 폭력적 에너지로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하는 방식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 비음악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쿨하고 철저한 느낌이다. 노출된 하드 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 서로 스치면서 소리내는 턴테이블과 일상용품, 또는, 다른 날 같이 연주한 류한길처럼 키 두드리는 소리가 증폭된 타자기와, 전자제품에서 무리하게 꺼낸 것같은 기계 부품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의 뒤엉킴. 이것들의 시너지 효과로, 때로는 폭력적인 인공음, 때로는 초원에서 우는 벌레들과 같이, 마치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 것같은 정적을 불러일으켜서, 결과적으로 음악 · 비음악의 경계선을 쉽게 넘는 경쾌함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냥 들으면 엉망진창인 것 같은 노이즈 속에 혼잡스러움을 아름다움으로 변환시키는 요소를 무한하게 안고 있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달콤한 유혹에 흡수되지 않고, 또, 큰 볼륨 속에 자아도취 되지도 않고, 소용돌이 치는 음괴(音槐)의 에너지를 냉철할 정도로 응시하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비젼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채로 지나쳐가는 풍경을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콘서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닻올림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YouTube 영상을 보면 그 분위기가 전해질 것 같은데, 적은 수였지만 열심히 들어주신 관객 분들의 자세를 포함해서, 현재 한국 · 서울의 실험 음악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면 좋겠다.
이상과 같이, 나의 한국 여행은, 이번에는 내가 그들이 활동하는 곳에 가서 현지에서의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는 흥분과 그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참가한다는 열광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한, 한 명의 관광객으로서는, 일본의 뮤지션들로부터 이미 소문으로 듣고 있던 한국 본토의 요리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악기 상점이 많은 건물(역자 주:낙원상가)을 구경할 수 있던 것 등, 실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진상태, 류한길 두 사람을 비롯해 도움 주신 서울의 실험 음악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아침에 바쁜 일들을 끝내놓고 무언가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부리나케 낙원상가에 가서 집게 마이크를 사가지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언제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세팅을 끝내놓고 약간의 리허설 이후 첫 세트인 나의 솔로 연주를 시작했다.
즉흥연주를 하면서부터, 솔로연주는 어색하고 긴장되는 자리였다. 어느 때 부터인가, 솔로로 연주하는 게 편해졌다. 또 하나의 솔로앨범을 준비하면서 연습으로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나 보니 더 그런 듯 하다. 언제나 협연의 가능성과 즐거움이 더 크긴 하지만, 솔로 연주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상 편하다. 이것은 ‘선호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항상 깔려져 있던 믹서 혹은 마이크에서 나오던 원치 않은 노이즈들이 거의 사라지며 음향으로는 근래에 가장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왔는데 흔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 마치 작년 하반기 경에 계속된 PA문제로 울상이었던 상황을 한방에 보상 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오늘의 연주는 세팅의 시간이 연주보다 어떤 측면에선 더 중요했는데,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조작으로만 연주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나왔기에 세팅에서의 밸런스, 즉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소리가 나오거나 영향을 받는 지점에서의 배음과 변주의 균형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주위의 연주자들은 다 알고 있지만, 내 셋업 시간은 다른 연주자들 보다 보통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정도가 더 필요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지겨움에 셋업 자체를 아예 고정시켜 커스텀 셋을 만들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반복되는 세팅때 마다 나도 몰랐던 새로운 방법을 알아가게 되었고 그 즐거움이 커져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솔로처럼 중간중간 셋업이 풀려 애써 연결해 놓은 하드디스크의 선들이 빠져 나뒹굴고 있을 때면 커스텀 셋업의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하지만 그런 좋지 않은 상황조차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애써 안 좋게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싶다. 다만 솔로 연주가 셋업에서 발음이 가능한 음들을 가지런히 배열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데, 예전부터 품고 있었던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답은 없다. 거기에 실수로 인해 오동작 하는 제법 비중이 큰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좋은 연주의 필수불가결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공간이 주는 익숙함 또한 크게 작용했다.
최준용과의 듀오의 컨셉은 모 레이블의 제의로 시작한 것으로 둘의 셋으로 드럼앤베이스(혹은 IDM, 여튼 그런 비슷한) 같은 튠을 만들어보자 라는 최준용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몇 번의 녹음을 했지만, 서로가 ‘잘 모르겠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식의 얘기만 반복되다 지난 녹음을 최근에 다시 들어보니 꽤 괜찮아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녹음 겸 공연을 해보자 하여 만들어진 세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연주가 끝난 뒤 서로를 바라보며 ‘잘 모르겠네…’라 중얼거리며 마무리 하고 말았다. 나의 연주만 놓고 보면 오늘은 드럼엔베이스라기 보단 힙합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데, 만들어 낸 혹은 우연이 섞여 만들어 진 리듬들이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연주가 기존의 즉흥음악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자 라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르겠다’라는 애매모호한 점이 나에겐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점때문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시도하게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