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end of year

이 글은 25회 공연과는 관련이 거의 없으며, 2011년 한해를 마치고 2012년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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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즉흥음악을 위한 공간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06년 11월에 있었던 도쿄 투어 중 ‘GRID605’라는 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였습니다. 그곳은 즉흥음악가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의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이었고, 현재 닻올림 보다 더 좁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토 아스히로(Atsuhiro Ito)와 같이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세세한 소리들의 밀도에 그 공간이 매우 특별해 졌습니다. 그것은 넓은 갤러리나 일반적인 공연장 또는 클럽 같은 곳에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어서 저는 적잖이 흥분했고 돌아오자마자 공간을 바로 준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준비도중, 바로 런칭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고 제가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도 막 사무실을 오픈하고 사업이 자리잡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1년정도 준비 및 마음가짐을 다잡은 뒤에 2008년 2월에 최준용씨의 공연으로 ‘닻올림 정기연주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2달에 한번씩 연주회를 하려고 하였으나 매번 때를 맞추어 공연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비정기적으로, 그러나 두 달보다는 좀 더 자주 연주회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현재 상황입니다.

이 공간을 시작하면서 가진 보람 중 하나는 여태껏 무료로 진행해오던 즉흥음악 공연이 유료로 전환할 수 있었다는 점을 꼽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그 동안 저를 비롯한 즉흥음악을 해오던 뮤지션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여태껏 RELAY를 비롯한 다른 즉흥음악 연주회들이 모두 무료로 진행되어 온 역사가 있어 ‘그냥 들어갈 수 있겠지’라 생각하시고 오시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 무료공연으로 진행되었던 것에는 좀 더 복잡한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여튼, 이런 상황에서 유료로 곧바로 전환하는데도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공연을 관람하고 그에 합당한 금액을 넣는 형식의 ‘자율기부제(자율입장료)’로 첫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성과는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그냥 나가시는 분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분들을 제외하면 인당 평균 5천원 이상의 돈을 넣어주셨으니까요. 연주회 유료화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15회 공연 (2011년 3월)부터는 1만원씩 받는 유료공연으로 전환되었습니다.이로서 적은 금액이지만 수고하신 연주자 분들께 조금이라도 연주비를 드릴 수 있단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두 번째 보람으로는 아카이브의 구축입니다. 닻올림의 모든 공연은 연주자가 특별히 업로드를 거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립니다. 현재까지 유튜브를 통해 연주회 동영상이 약 2만회정도 조회되었고, 한국의 아티스트들을 소개할 때 많이 인용이 되는 채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연주의 과정, 결과 또는 연주의 느낌들을 다르게는 말하고 싶은 얘기들을 연주자들이 직접 작성하여 ‘공연후기’를 공개해서 관객들과 청자들에게 연주자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쌓여 공간을 얘기하고 한국의 즉흥음악을 얘기하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image 그리고 이것은 보람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다행스레 생각하고 감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연주회를 진행하며 이웃과 별 다른 항의와 그로 인한 충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닻올림은 오피스텔이라는 조건에 비하면 실내방음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고, 입주해 계시는 다른 이웃 분들도 너그러이 생각해 주셔서 아직 ‘충돌’이라고 할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15회 ‘불특정한 언어’  공연을 위한 리허설 때는 아랫집에 계신 분이 올라오셔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시는 상황이 있었지만 무용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시곤 웃으면서 ‘계속하세요’ 라며 이해해주셨던 아래층 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레코딩세션때 너무 큰 볼륨이 걱정이 되어 앞집에 반응을 물었을 때 ‘세탁기 돌리는 거 아니었어요?’ 라는 답을 듣고선 안도의 한 숨을 쓸어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오피스텔 안에 계신 분들도 연주회에 대해 문의를 하시는 분들이 생겨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2012년 닻올림 주변에 재개발이 있어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라 그 공사로 인해 연주회가 지장이 있을 지가 염려스럽습니다. 이점은 연주회 시간을 조정하는 것으로 대응을 하려 생각 중입니다.

이 공간을 처음 오픈할때 아티스트들에게 그들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생각들을 구현해보는 부담 없는 실험실, 상관없을 것 같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느슨하던 혹은 세게 결속이 되던 연결이 되는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쓰여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4년째 같은 곳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세월에 비교하면 그리 많은 연주회를 진행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공간이 평일에는 저의 사무실로 운영이 되는, 기본적으로 저의 개인 공간이기에 그런 점이 있고, 숫자가 많지 않은 즉흥음악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만들어 나가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2012년에는 그 동안 공간을 운영하면서 하고자 했던 몇 가지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닻올림이라는 레이블 이름들 단 음반이 올해 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필드레코딩 컴필레이션 CD를 첫 작품으로 준비중이구요, 이후에 닻올림에서 레코딩 세션을 가졌던 해외 뮤지션의 CDR도 발매 될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는 청자들의 의견을 듣는 ‘백일장’ 입니다. 이것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인 2월 중에 계속 응모작을 받고 있으니 ‘제1회 닻올림 백일장’에 대한 안내문을 참조해 주시면 좋겠구요, 마지막으로 ‘닻올림 페스티벌(가제)’를 준비중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지불하신 소중한 입장료를 계속 적립해 놓았고, 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에 좀 더 돈을 모아 11~12월 경에 즉흥음악을 중심으로 기금에서 자유로운 독립 페스티벌을 기획 중입니다. 좀 더 구체화 되는 데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만 이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입장료가 오를 여지가 있음을 먼저 알려드리며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입장료가 오르게 된다면 너그러이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이 글을 빌어 그 동안 연주해주신 많은 분들, 그 중에서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신 매뉴얼의 류한길, 벌룬앤니들의 최준용, 홍철기씨, 이행준씨에게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그동안 닻올림 연주회를 지켜봐 주신 관객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며, 2012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좀 더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어떻게든 그 관심을 더 좋은 공연으로 돌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_진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