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닻올림’의 열여섯번째 연주회가 2011년 5월 14일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립니다.
2008년 2월 시작한 공간 ‘닻올림’은 오피스텔을 개조한 20석 규모의 소형 공연장 및 레코딩 스튜디오로 즉흥음악을 중심으로 정기연주회 및 영상물 상영회, 전시등를 진행하는 작은 공간입니다.
이번 연주회는 필름 + 사운드 퍼포먼스 ‘내일을 위하여 : 누구의 침묵이 더 어두운가? 누구의 화이트 프레임이 더 시끄러운가?’라는 제목으로 이행준과 홍철기의 퍼포먼스가 있을 예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작품소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상황에서의 침묵의 기능, 효과에 관한 작업이자 푸티지(“내일을 위하여”는 이 푸티지의 제목이다)에 기반한 작업의 다른 방식. 침묵은 금욕적인 방법으로 욕망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갖는 동시에 그 욕망의 대상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 작품은 침묵을 통해 단지 순수하게 정화된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미적 대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미적 대상의 토대가 되는 정화되지 않은 제도와 실천(혹은 이전까지 모호하게 ‘권력관계’라고 불렸던 어떤 것)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작품에는 상황에 따라 관객 참여를 요청하는 지시사항이 포함될 수도 있다.
연주자
이행준Lee Hangjun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 프로그래머(2009~2010), 인디스페이스(2007~2009)/영상자료원(2010) 실험영화 정기상영회 프로그래머로 활동하였으며, 실험영화 비정기 간행물 나방N’Avant(2006~2009) 편집위원, Experimental Media Congress(토론토) / Film Appreciation Journal(대만) / new media(중국) / forum lenteng(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저널 등에 artist film/video에 관한 글을 발표/기고하였다. 스페이스 셀, 예술의 전당 미술아카데미, 미디액트, 한국문화영상고등학교, 문지문화원 사이 등에서 매체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했으며, 쿤스트 독 갤러리, 아르코갤러리, 비하이브 갤러리 등에서 전시/토크/상영 등의 기획을 진행하였다. 2009년 부터는 아시아의 대안적 영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매해 Asia Forum을 개최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2009년 서울, 2010년 타이페이), 그 결과물을 2009년 아시아 실험영화anthology on issues in Asian experimental media로 출판하였다. 2004년 부터 주로 필름 매체의 물질성과 즉흥적 구성에 기반한 다양한 16mm 필름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홍철기/최준용과 함께 영상/사운드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오고 있다. 주요 작품들은 프랑스 라이트 콘lightcone에서 배급중이며, 매팅 시네마Matting Cinema와 소산의 연대기Chronicle of a Disappearance 등의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www.hangjunlee.com
홍철기 Hong Chulki
1997년에 최준용과 함께 한국 최초의 노이즈 음악 그룹인 아스트로노이즈(Astronoise)를 결성한 이래로 노이즈 음악과 즉흥음악, 실험음악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악기의 소리에 효과를 더해주거나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장치 자체의 음악적, 음향적 가능성을 탐구해왔으며 자주레이블 을 통해 이러한 ‘음악 아닌 음악’을 음반의 형태로 발표해왔다. 프리뮤직 정기공연인 <불가사리>의 일원이었으며 즉흥음악 연주회/연주집단인 RELAY의 창립멤버다. 곡사, 이행준 등의 한국 독립/실험영화감독들과 작업해왔으며, 음향을 매체로 삼아 만든 설치 작품들이 백남준 아트센터 등지에서 전시되었다. <키타큐슈 비엔날레>와 등을 비롯한 국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연주한 바 있다. http://www.hongchulki.com / http://www.balloonnneedle.com
작년(2010년) 12월,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은 나의 첫 한국 방문이었는데, 진상태, 류한길 등 서울에 사는 뮤지션들이 투어차 몇 번 도쿄에 왔을 때 같이 연주하고 술을 마시다가 이루어진 것이다.
짧은 체류 일정은 레코딩 1번과 콘서트 2번으로 바빴다. 그 중 레코딩과 콘서트 1번씩은 진상태가 빌리고 있는 오피스텔 방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가 ‘닻올림’이라고 이름붙인 그 방에 들어섰을 때 든 느낌은, 너무 넓지도 않고 너무 좁지도 않은, 그래서 나에게 딱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 大友良英)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도쿄 키치죠지의 아파트 방 하나를 콘서트장으로 탈바꿈시킨 GRID605나, 화가 겸 뮤지션인 아츠히로 이토(Atsuhiro Ito, 伊東篤宏)가 도쿄 주택가의 작은 집을 갤러리로 개조한 오프 사이트(Off Site) 등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는데, 그 중 오프 사이트는 나와 토시마루 나카무라(Toshimaru Nakamura, 中村としまる) 등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국내외의 뮤지션을 초청해 즉흥 연주 콘서트 시리즈를 열었던 곳이다. 앞의 콘서트장 모두 나의 메인 악기인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에는 최적의 넓이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작은 소리를 내는 악기라도 소리를 방 안에 충분히 울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관객과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때로는 1미터 이하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악기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연주자의 숨결-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즉, 즉흥 연주자가 다음 순간에 어떤 소리를 내려고 하는 기운이, 말그대로 몸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기운이란 건, 연주자의 몸짓에서 예상된다거나 하는 단순한 게 아니다. 정적을 유지하거나 지속음을 계속 내거나 미동조차 하지 않는 연주자들의 분위기에서조차,그 배후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인 것이다.
이야기를 바꿔서, 서울에 도착한 날에는, 조 포스터(Joe Foster), 홍철기, 진상태, 거기에 나까지 4명이 닻올림에서 레코딩을 했다. 그 다음 날 콘서트에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조 포스터를 제외하고 전날의 세팅대로 나머지 3명끼리 연주를 했다. 그 날 연주는 닻올림에서 2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리즈의 14번째 콘서트였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쿄에서 이와 비슷한 즉흥 연주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주최해 온 나로서는, 이런 현장에 참가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매우 가까운 거리임에도 지금까지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던 한국이었는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콘서트는 길게 한 세트를 했다. 나는 피드백을 이용하기 위해서 기타 앞에 마이크를 세우고, 기타의 사운드 홀 부분을 손바닥으로 마이크와 함께 싸서 작은 소리로 피드백 · 드론(drone)을 컨트롤했다. 진동하는 기타의 몸체 표면에 놋쇠 막대를 가볍게 쳐서 지속적인 노이즈를 만들거나, 그 놋쇠 막대로 기타 줄 위의 배음(倍音) 지점을 문질러서 여러 개의 고주파 배음이 복잡하게 얽히도록 연출하기도 했다. 상태는, 평소의 그의 세팅대로 하드 드라이브, 콘택트 마이크, 믹서를 사용한 피드백이나, 세심한 글릿치(glitch) 노이즈를 이용한 불규칙적인 비트를 만들어내서 독자적인 불안정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철기는, 아날로그 레코드 플레이어인 턴테이블의 회전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거기에 어디선가 주워 온 것 같은 일상용품 등의 일부분을 문지르거나 활로 연주해서 불가사의한 지속음 등 굉장히 변화가 풍부한 소리를,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 어쿠스틱으로 만들어 내었다. 최근 나의 연주는 멜로디를 만들어서 전체를 추상적인 음악적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식인데, 이 날 기타 연주에서는 보다 즉물적이고 음향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연주했다. 그건, 그들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원시성에 동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트리오가 만들어낸 소리들은, 얽히지 않으면서도 얽히고, 조화롭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우며, 어딘가 막 생긴 행성 위에 쏟아져 내린 비가 모여 생긴 강이 우거진 원시림 사이를 뱀처럼 기어가며 맑아지거나 탁해지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만드는 듯이 흘러갔다.
한국 실험 음악가들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들의 음악은 소위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저 악기가 아닌 것으로 하는 연주라면 요즘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규범으로 해야 하는 구식 개념을 깨려는 서양적 접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노이즈 음악처럼 그저 사운드의 폭력적 에너지로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하는 방식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 비음악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쿨하고 철저한 느낌이다. 노출된 하드 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 서로 스치면서 소리내는 턴테이블과 일상용품, 또는, 다른 날 같이 연주한 류한길처럼 키 두드리는 소리가 증폭된 타자기와, 전자제품에서 무리하게 꺼낸 것같은 기계 부품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의 뒤엉킴. 이것들의 시너지 효과로, 때로는 폭력적인 인공음, 때로는 초원에서 우는 벌레들과 같이, 마치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 것같은 정적을 불러일으켜서, 결과적으로 음악 · 비음악의 경계선을 쉽게 넘는 경쾌함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냥 들으면 엉망진창인 것 같은 노이즈 속에 혼잡스러움을 아름다움으로 변환시키는 요소를 무한하게 안고 있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달콤한 유혹에 흡수되지 않고, 또, 큰 볼륨 속에 자아도취 되지도 않고, 소용돌이 치는 음괴(音槐)의 에너지를 냉철할 정도로 응시하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비젼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흔들리는 채로 지나쳐가는 풍경을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콘서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닻올림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YouTube 영상을 보면 그 분위기가 전해질 것 같은데, 적은 수였지만 열심히 들어주신 관객 분들의 자세를 포함해서, 현재 한국 · 서울의 실험 음악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면 좋겠다.
이상과 같이, 나의 한국 여행은, 이번에는 내가 그들이 활동하는 곳에 가서 현지에서의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는 흥분과 그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참가한다는 열광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한, 한 명의 관광객으로서는, 일본의 뮤지션들로부터 이미 소문으로 듣고 있던 한국 본토의 요리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악기 상점이 많은 건물(역자 주:낙원상가)을 구경할 수 있던 것 등, 실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진상태, 류한길 두 사람을 비롯해 도움 주신 서울의 실험 음악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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