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시계태엽에서 어떤 형태의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어서 환기를 시키는 차원에서 다른 연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무엇인가와 연결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시계태엽의 작동에 의한 음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동에 의해 발생하는 음향의 구조만을 취할 수는 없을까?
이 관심은 이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타자기와 전화기 등에 관련된 사항이기도 했고 음악을 연주한다라는 행위의 태도를 어떤 방식으로 전환해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어쨌든 과도기 적인 상황에서의 솔로는 사실 많이 두려운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공연 전날 거의 밤을 세워 준비를 했다.
공연 날 낮에는, 평소 버려진 시계태엽 부품이나 오래된 타자기 등을 싸게 파는 단골가게에 몇 대의 오실레이터를 사고자 하는 철기를 안내해 주었다. 날은 더웠고 습했다. 철기를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가는데 에도 예상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넘겨버릴 정도로 교통체증 또한 심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 겨우 오실레이터를 장만하고 서둘러 닻올림으로 향했다.
닻올림에 도착해서 공연 준비를 하다가 내가 사용하는 두 개의 소형앰프 중 하나의 어댑터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히 짐을 잘 챙겨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준비했던 것의 반쪽 짜리 음향으로 솔로 연주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역시 혼자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을 때보다 즉흥연주를 할 때의 긴장감이 더 많은 가능성들, 방법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어차피 시계태엽이든 무엇이든, 전통적으로 악기라고 인지되지 않는 것들을 이용해서 연주를 하고자 할 때에 즉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식인 것 같다.
다소 단조로운 듯 하지만 리듬에 대한 나의 관심이 잘 반영되는 사운드를 들었고 거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혼자서 긴 호흡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 옛날, 어머니들이 빨래 망망이질을 하던 그 호흡이 떠올랐다.
솔로의 연주가 끝나고 상태와의 협연. 최근 서울에서 활동하는 몇 명의 즉흥연주자들 중에서 음악활동과 관련하여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경우를 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상태와의 협연에서 나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다. 번번히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 이 과정이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라는 점 만큼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릴레이 이후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견뎌 나가야 하고 음악은 필연적으로 그런 부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취미로서든 전문적인 음악가로서든 분명히 나는 그날의 연주를 즐겼다.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모두들 주린 배를 채우러 근처 고기집으로 향했고 상태가 집에 가는 길에 닻올림에서 발견한 집에 두고 왔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던 어댑터를 전해 주었다.
‘스피커 위에 올려져 있던데…’
만약에 이 어댑터를 연주 전에 발견해서 밤 세워 준비한 대로 잘 진행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더 안 좋았을 것 같고 그날의 연주에 대해서 망쳤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멀쩡하게 가져와 놓고 잊어 먹은 나 스스로를 칭찬 해줘야 겠다.
‘잘했다! 잘했다!’
by 류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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